임신과 육아

[미국 임신 기록 #3] 임신 말기보다 더 힘들었던 임신 초기

아메리칸동치미 2026. 6. 6. 03:18

임신 사실을 알고 기뻐했던 것도 잠시, 제게는 6주 차부터 청천벽력 같은 입덧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소화가 좀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진짜 입덧은 차원이 다른 무력감과 고통이더라고요. 속이 너무 미식거려서 뭘 먹으면 소화가 안 되고, 안 먹으면 속이 비어서 토할 것 같은 지옥의 굴레였습니다.

미국이라는 타지에서 겪어 더 외롭고 힘들었던 제 입덧의 기록을 기간별로 정리해 보고, 흔히 말하는 입덧 완화 방법들이 저에게는 어땠는지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겪어본 사람만 아는 기간별 입덧의 기록

6주 ~ 8주 차: 먹덧과 토덧의 시작, 그리고 기이한 냄새덧

이 시기에는 속이 비면 목구멍에 음식물이라도 쑤셔 넣어야 겨우 진정이 되는 먹덧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먹고 나면 다시 미식거림이 몰려왔어요. 평소 좋아하던 음식들은 쳐다보기도 싫어졌고, 타지에서 문득 한국 음식이 생각나도 바로 구할 수 없어 서러웠습니다. 하루는 잡채가 너무 먹고 싶어 집 재료로 그럴싸하게 만들어 먹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미국 입덧은 한 번 먹은 음식은 두 번 다시 입에 대기 싫어지는 괴로움이 있더라고요. 갑자기 땡긴 냉면이나 매쉬포테이토도 남편이 겨우 구해다 주면 딱 한 번 먹고는 냄새가 역해져서 그대로 버려야 했습니다.

 

특히 냄새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예민해졌습니다. 속을 달래려고 사둔 김치 냄새가 너무 역해서 냉장고 문을 아예 열지 못했고, 2층 침실에 누워 있는데도 1층 냉장고 냄새가 올라오는 희한한 경험을 했습니다. 심지어 깔끔하고 잘 씻는 남편에게서도 난생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남편 덧'까지 겹쳐서 남편 잠옷을 매일 세탁하며 버텼습니다.

8주 ~ 12주 차: 토덧과 양치덧의 쓰나미

8주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살 만한 날이 아예 사라지고 토덧과 양치덧이 쓰나미처럼 몰려왔습니다.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해 과일로 연명을 해야 했습니다. 하필 계절이 겨울이었는데, 미국 겨울 과일인 수박, 멜론, 딸기는 정말 맛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살기 위해 맛없는 과일이라도 씹어 삼켰지만 먹는 족족 토해 내기 일쑤였습니다.

 

머리를 침대에서 뗄 수조차 없었고, 조금씩 자주 먹으라는 조언대로 해 봐도 계속 토하다 보니 역류성 식도염까지 와서 위가 타들어 가는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위액을 토해내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제 상태 때문에 외식도 요리도 못 하면서 매일 마트를 뒤지느라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몸은 몸대로 축나던 가장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12주~22주 차: 기적은 없었지만, 약으로 찾아온 40%의 일상.

다들 12주만 지나면 신세계가 온다고 위로해 주어서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12주가 되던 날 저녁, 오히려 극심한 위 통증과 함께 분수토를 하며 저에게 기적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결국 13주 차에 병원에서 입덧약을 처방받았습니다.

 

미국 병원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약이라며 비타민 B6(25mg)와 독실라민(Doxylamine Succinate 25mg), 그리고 정말 심할 때 먹는 온단세트론(Ondansetron 4mg)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비타민 B6는 미식거림을 줄여주고, 독실라민은 구토를 완화해 준다고 하여 매일 챙겨 먹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먹으니 컨디션이 100퍼센트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한 40퍼센트 정도는 미식거림이 가라앉아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분수토를 하기도 하는 등 기복이 심했지만, 아침 공복에 토하는 증상은 아주 서서히 좋아졌습니다.

22주 차 ~ 33주 차 현재: 기적 대신 찾아온 적응과 일상 회복

22주를 기점으로 아침에 일어나는 게 눈에 띄게 수월해졌습니다. 냄새덧과 남편덧이 사라지면서 드디어 다시 주방에 서서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남편과 저는 이것만으로도 기적이라며 기뻐했습니다. 물론 남들이 말하는 '임신 전 완벽한 컨디션'으로의 회복은 아니었습니다.

33주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속이 갑갑하고 목에 무언가 걸린 듯한 이물감은 계속 남아 있습니다. 자궁이 위를 누르면서 생기는 증상이라 출산 전까지는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헛트림과 용트림이 멈추지 않아 옆에 있는 남편에게 늘 실례를 범하고 있어서 미안할 따름입니다 ^^;;. 여전히 저녁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멀미하는 것처럼 속이 뒤집어지기 때문에, 출산 직전까지 약을 쭉 먹으며 일상을 유지하기로 의사와 상의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입덧 완화 방법, 실제로 효과가 있었을까?

인터넷이나 블로그에서 입덧에 좋다고 추천하는 수많은 방법들 중, 제가 직접 시도해 보며 느낀 솔직한 후기입니다.

1. 크래커, 비스킷 (공복덧 완화)

  • 효과: 부분적으로 도움이 됨
  • 아침에 공복 상태에서 위액을 토하는 걸 막기 위해 침대 머리맡에 참크래커나 비스킷을 두고 눈뜨자마자 입에서 녹여 먹었습니다. 위를 살짝 달래주는 데는 분명 효과가 있어서 병원 대기실에서도 요긴하게 먹었지만, 입덧이 정말 세게 오는 날에는 이것마저도 소용없이 토해내게 되더라고요. 단기적인 방어책으로는 추천합니다.

2. 텀스 (TUMS) 및 제산제

  • 효과: 위 통증 초기에는 효과 있음
  • 잦은 구토로 역류성 식도염이 와서 위가 찢어질 듯 아플 때 남편이 급하게 사다 준 텀스를 먹었습니다. 초기에는 확실히 위산을 진정시켜 주어 큰 도움이 되었지만, 입덧 자체가 심해진 후기에는 텀스를 삼키자마자 텀스마저 토해버리게 되어서 결국 처방약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신맛 나는 주스, 사탕 (오렌지 주스, 레몬 사탕)

  • 효과: 일시적인 완화, 그러나 부작용 있음
  • 입안이 텁텁하고 미식거릴 때 오렌지 주스나 레몬 사탕을 먹으면 순간적으로 침이 고이면서 미식거림이 가라앉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주스의 산성 성분 때문에 역류성 식도염이 더 악화되어 나중에는 속쓰림으로 더 고생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그 특유의 사탕 단맛이 별로였습니다 ㅠ.

4. 물 벌컥벌컥 마시기

  • 효과: 절대 금지, 입덧을 악화시킴
  • 원래 물을 엄청 많이 마시는 편이라 입덧 중에도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가 그대로 분수토를 경험했습니다. 속이 안 좋을 때 액체가 한 번에 많이 들어가면 위가 뒤집어지더라고요. 입덧이 심할 때는 물조차 제대로 마시기 힘들어서 입만 축여야 했습니다. 중기가 지나서야 겨우 물을 제대로 마실 수 있게 되었을 때 정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5. 미국 입덧 처방약 (Vitamin B6 + Doxylamine)

  • 효과: 가장 확실하고 실질적인 도움
  • 결국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병원 약이었습니다. 입덧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하지만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증상을 눌러줍니다. 아기에게 안전한 성분들이니 무작정 참기보다는 약의 도움을 받아 임산부의 일상을 되찾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정말 죽을 것 같던 지옥 같은 시간도 결국은 시간이 흐르니 지나가기는 하더라고요. 아무것도 먹지 못해 병원에서 링거를 맞아야 하는 분들에 비하면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스스로 감사하며 버텼습니다.

 

하지만 입덧이 심하든 덜하든, 모든 임산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이만하면 다행이다", "그 정도면 심한 편 아니다"라는 말은 위로가 되기는커녕 임산부를 더 힘들게 만들 뿐이더라고요. 그저 다독여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입덧으로 힘든 하루를 버텨내고 계실 모든 임산부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